"국방비 두 배 올려라"…'트럼프 안보 청구서' 덩치 커졌다
'GDP의 5%" 기준선 제시…61조원→120조원 이상 인상 요구 예상
"미국, 동맹 구조 변화 추진"…방위비분담금·주한미군 사안도 '패키지' 예상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올리라는 요구를 공식화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문제로 시작된 미국의 안보 청구서의 덩치가 예상 밖으로 커진 것으로, 국면을 맞게 됐다. 방위비분담금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전시작전권 전환까지 통합된 '패키지 딜'이 추진될 가능성도 20일 제기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의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 청문회에 출석,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을 공약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 지출 확대 노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동맹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국방 지출 기준을 갖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션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뉴스1의 질의에 "유럽 동맹들이 아시아 동맹들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정하고 있다"라며 "그 기준은 GDP의 5%를 국방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미국이 제기할 안보 청구서의 핵심이 국방비 인상 요구일 것임을 시사했다.
그간 미국이 제기할 안보 청구서는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인 방위비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즉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따른 한국의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 요구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 기간에 한 발언이거나, 미국 매체의 보도로 나온 것으로, 미국 당국자와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요구 조건'을 제기한 것은 국방비 인상이 처음으로 볼 수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국방비는 약 61조 원(GDP의 약 2.3%) 수준인데, 이를 미국의 요구에 맞춰 5%로 늘리려면 약 2배 이상을 증액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분담금을 100억 달러(약 13조 원) 올리겠다고 발언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액수로, 현실적으로 이같은 예산안을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직접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보지 않는 국방비 인상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돈 문제가 아니다"라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궁극적으로 각 동맹이 자국의 안보 능력을 강화해 미국이 '손을 덜 댈 수 있게' 안보 동맹의 구조를 바꾸려는 의도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 언론 등 외신은 최근 미국이 지난 3월 대중 견제를 우선 가치로 내세운 '임시 국방 전략 지침'을 마련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역할 변화, 즉 주요 임무를 대북 억지에서 대중 견제로 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는 쉽게 말해 미국이 한국에게 보장해 왔던 대북 억지 능력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신 국방비를 늘려 공백을 채우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GDP 5%는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이제 자국의 방어는 각자 책임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은 더 이상 북한 재래식 위협에 대해 미국이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대비태세와 미군 주둔 비용을 모두 포함해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는 오는 24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서는 미국이 국방비 증액을 통해 결국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하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시나리오는 관세 협상에 있어 미국과의 무역 폭을 넓히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어 실제 전략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신 미국에 광폭의 첨단기술 이전을 요구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일각에선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우리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한미는 6:4 정도로 분담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국방비 인상 대신 한국이 받을 수 있는 '메리트'를 밀도 있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조기 전환과 한미 연합사령부 체제의 개편을 통해 우리 군의 주도적 의사결정권을 더 확보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다자외교를 활용해 비슷한 압박을 받는 국가들과 공동의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나토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국방비를 올리겠다는 협상 방식을 구사하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미국이 원하는 모든 요구의 결정판은 결국 국방비 인상"이라며 "국방비가 늘면 무기 구매도 늘게 되고, 이는 미국 군수산업에 도움이 되니 트럼프 입장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GDP 5%로의 인상은 불가능하지만, 나토처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3%로 올리는 등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협상력을 갖출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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